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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유적지 | 금관가야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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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
봉황동유적(사적 2호)
구분
생활유적
내용
김해 시가지의 서쪽에 있는 독립구릉의 전역에 유적이 형성되어 있다.
1907년 일본인 今西龍과 이후 일본인에 의해 남동쪽의 낮은 구릉에 대하여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김해패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63년에 김해 회현리패총이란 이름으로 사적 2호로 지정되었고, 봉황대 구릉은 1983년 경남문화재자료 87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에 구릉의 전역에 대한 시굴조사가 부산대학교박물관에 이루어졌고, 이후 동쪽의 진입로, 소방도로, 서쪽의 평지(가야생활체험촌부지) 등에 대한 조사가 부산대학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경남고고학연구소 등에서 수차에 걸쳐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구릉뿐만 아니라 평지의 전역에서 삼한~가야시기의 유구가 검출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대규모의 주거지와 고상건물지, 환호, 토기가마를 미롯해 왕궁지로 전해오는 지역에서는 궁성 혹은 도성으로 추정되는 토성까지 확인되었다. 특히 평지에는 현지표의 2~3m아래에 금관가야의 도시시설이 잘 남아 있어 앞으로의 조사와 연구가 기대된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2000년 2월에 회현리패총과 봉황대유적을 묶어 ‘김해 봉황동유적’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사적 2호로 확대지정하였다.

봉황동유적(사적 2호)